
누구에게나 부모님께 서운했던 기억 하나쯤은 있다. 크게 혼났던 날, 내 마음을 몰라 주던 말, 필요한 순간에 곁에 없던 모습.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문득 떠오르면 마음 한쪽이 먹먹해지는 장면들이다.
나도 그랬다. 어른이 되면 다 잊힐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서운했던 기억은 오래 남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같은 기억이 조금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때의 부모님은 지금의 나보다 어렸다
가장 크게 달라진 건 부모님의 나이에 대한 생각이다. 어릴 때 부모님은 세상을 다 아는 어른이었다. 그래서 어떤 결정이든 당연히 옳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그때 부모님의 나이가 되어 보니 알겠다. 그분들도 처음 사는 인생이었다.
생계를 책임지느라 지쳐 있었고, 처음 겪는 육아에 서툴렀고, 자신도 누군가에게 받은 적 없는 다정함을 어떻게 줘야 할지 몰랐을 것이다. 지금의 나보다 어린 나이에 세상 모든 걱정을 짊어지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그날의 말과 행동이 다르게 읽힌다.
이해와 용서는 다른 문제다
여기서 한 가지는 분명히 하고 싶다. 부모님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해서 그때의 상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이해하는 것과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다른 일이다. 어떤 말은 사정이 있었어도 아팠고, 어떤 행동은 이유가 있었어도 잘못이었다.
그래서 서운함을 억지로 지우려고 하지 않는다. 서운했던 마음은 서운했던 대로 인정해 준다. 그 시절의 나는 충분히 서운할 만했다고, 그럴 수 있었다고. 그렇게 내 마음을 먼저 알아주고 나서야 비로소 부모님의 사정도 들여다볼 여유가 생겼다.
부모님도 나에게 미안해하고 있었다
시간이 흐른 뒤 알게 된 사실이 하나 있다. 부모님도 그때의 일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로 꺼내지 않을 뿐이지, 자식에게 더 잘해 주지 못한 아쉬움을 마음에 품고 계신 경우가 많다. 표현이 서툰 분들이라 그 마음이 엉뚱한 방식으로 나오기도 한다. 괜히 반찬을 챙겨 주거나, 별일 없냐고 자꾸 전화를 하거나, 필요 없다는 것을 굳이 사서 보내는 식이다.
예전에는 그저 잔소리 같았던 것들이 이제는 서툰 사랑의 방식으로 읽힌다. 사랑한다는 말은 못 하셔도 밥은 먹었냐는 한마디에 모든 마음이 들어 있었다는 걸 이제야 안다.
서운함을 마주하는 몇 가지 방법
서운했던 기억이 여전히 마음에 걸린다면 몇 가지를 해 볼 수 있다.
글로 적어 본다. 그때의 장면과 감정을 있는 그대로 적어 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누구에게 보여 줄 필요도 없다. 글로 옮기는 순간 감정이 조금 떨어져서 보인다.
상황을 다시 본다. 그 시절 부모님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떠올려 본다. 변명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이해해 보려는 시도다.
필요하다면 말로 전한다. 모든 것을 따지듯 꺼낼 필요는 없지만, 꼭 하고 싶었던 말이 있다면 차분하게 전해 보는 것도 방법이다. "그때 사실 많이 서운했어요" 정도의 한마디가 오래 묵은 감정을 풀기도 한다. 다만 상대가 방어적으로 나올 수도 있으니, 사과를 받아 내겠다는 기대보다 내 마음을 전한다는 정도의 목표가 더 편하다.
전하기 어렵다면 놓아 준다. 모든 부모님이 대화가 통하는 것은 아니다. 끝내 전하지 못하거나 전해도 닿지 않을 수 있다. 그럴 때는 내 마음을 내가 보살피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용서는 상대를 위한 일이기 전에 나를 가볍게 하는 일이다.

내가 부모가 되어 보니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부모가 되고 나서야 부모님을 이해하게 됐다고. 하지만 그 말에는 이런 이면도 있다. 부모가 되어도 완벽할 수는 없다는 걸 알게 됐다는 것이다. 아무리 잘하려고 해도 아이에게는 서운한 순간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결국 어느 부모도, 어느 자식도 완벽하지 않다. 서로가 서툴러서 상처를 주고받고, 시간이 지나서야 알아차리고, 그제야 조금씩 마음을 풀어 간다. 그게 가족이라는 관계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맺으며
부모님께 서운했던 기억은 어쩌면 평생 완전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그 기억을 바라보는 내 눈이 달라질 수는 있다. 원망으로만 남겨 두던 기억이 이해와 안타까움이 섞인 기억으로 바뀌는 것, 그것만으로도 어른이 된 보람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늘 부모님께 전화 한 통을 드려 볼까 한다. 거창한 이야기는 없어도 된다. "밥 드셨어요?" 그 한마디면, 서로가 오랫동안 하지 못했던 많은 말이 대신 전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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